들어가며
며칠전, 회사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분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1. 채용
회사에서 새로운 동료를 모집하기 위해 채용공고를 올렸고, 면접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분께 면접 기회를 드린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 필자와 비슷한 나이(30초)임에도 불구하고, 그누보드(PHP)를 할 줄 안다는 것
- 포트폴리오의 결과물과 코드, 구조가 깔끔하다는 것
- 퍼블리셔에서 개발자로 전향한 것(이전 회사에서 그누보드를 다루게 되었음)
- 개발자의 꿈을 안고 직장다니며 컴공 수업을 듣고, 퇴사 후 학원에서 개발자 수업을 들었음
1번 내용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긴 하나, 간략하게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0년 이상 된 레거시 프로젝트로, CodeIgniter3(PHP 5.6)로 개발된 서비스를 유지보수해야 한다.
필자는 그누보드를 다뤄본 경험이 없으나, 현재 프로젝트의 구조와 코드가 그누보드랑 매우 유사하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그분께 면접 제의를 드리고 나서 마음속 한켠에는 그분의 성장 가능성에 비해 회사의 체계와 업무 방식, 기술 등이 매우 형편없다는 찝찝함을 느꼈다.
2. 면접
약 40분 정도 인터뷰를 진행한 것 같다. Java(Spring Boot)를 하고싶어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 당장 PHP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인터뷰 종료 후에도 꽤 고민을 하곤 했다. 인터뷰 이후 실제로 필자가 다른 면접관에게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제 인간성(이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양심에 더 가깝기도 하다)을 버리면서까지 회사를 위해 저분을 뽑는게 맞을까 고민되네요. 개인적으로는 저분(면접자)께 죄송스러워요.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긴 하나, 필자 역시 지금 회사에 들어오고나서 1주일 간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다. 현실과 이상 그 사이에서 이상을 잠시 내려놓으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성장하리라는 의지 하나로 지금까지 이겨낸 것 같다.
환경이 좋은 곳에서만 성장하려고 하면 나중에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에서의 이겨낸 경험은 더 쌓기 싫어질 것 같기 때문이랄까?
인터뷰에 같이 참여했던 다른 동료분께서 면접자분께 최종 합격 연락을 드렸고, 이번주 월요일에 정식으로 출근하였다.
3. 온보딩
지금 필자가 있는 회사는 온보딩, 커피챗이라는 개념이 없다.
회사에 처음 왔을 때부터 생각이 들긴 했지만, 필자가 바라본 회사는 마치 드라마
미생
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그것도 싱크로율이 낮은, 그저 어설픈미생
말이다.
월요일 오전부터 동료와 함께 커피챗을 진행하며 그분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고, 오후에는 필자가 하는 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해주며 큰 맥락에서의 인수인계를 하였다. 커피챗이라는 이름 하에 자연스러운 온보딩을 시작했는데, 참 많은 대화가 오갔다. 서비스의 발단부터 배경, 기술적인 구조와 업무 방식 등부터 해서 개인적인 기술적 성장, 목표 등에 대한 다양한 대화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후 퇴근 길에 같이 버스정류장에 걸어가면서 사담도 나누며 조금씩 친해질 수 있었다.
4. 작별인사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회사 동료에게 전화한 통을 받았다.
긴급속보! 오늘 출근하신 분께 연락이 왔었는데요, 내일부터 안 나오겠대요.
소식을 전달받고 그분께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것 같다.
잘 선택하셨어요. 개인적으로 아쉬우면서도 후련하네요. 면접을 본 후부터 마음 한 켠에 무거운 짐을 든 느낌이었거든요. 선택을 존중하고,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원하는 방향대로 성장하셔서, 훗날 꼭 같이 일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후회를 잘 하지 않는 편임에도 아래 내용은 지금까지도 후회가 된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첫 날 같이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 저녁 식사 제안이라고 할 걸. 저녁 운동을 가야해서
내일 봬요
라는 인사를 끝으로 마지막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분께 전화통화를 끝내자마자 회사 윗 분들께 연락이 와서, 술 한 잔 하며 이런 저런 대화를 했다.
주로 피상적인 대화만 오가곤 했다.
늦은 새벽, 집에 돌아와서 그분께 이메일 답장과 카톡을 보냈는데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되어서 횡설수설 답장을 보낸 것 같다.
이메일 답장을 적다가 연락을 받고 바로 나간 터라 그런지, 술에 취해 답장을 해야한다는 강박이 통제가 안 되어 무조건 답장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좀... 자고 일어나서 답장해도 되는데 말이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횡설수설한 내용임에도 따뜻한 답변을 해주셔서 감사함을 느꼈다. 아, 물론 창피함은 필자 본인의 몫이다.
5. 결
회사에서는 볼 수 없겠지만, 종종 연락하며 지내기로 했다. 서로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연락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필자가 먼저 연락을 할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기하리만큼 모든게 자연스러웠다는 느낌을 받았다. 첫 인사부터 대화,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말이다. 항해99에 합류했을 때, 남병관 CTO님께서 자주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함께 밥을 먹고 싶고, 일하고 싶은 사람
다른 선배분들에 비하면 필자가 면접관으로 참여한 경험은 형편없겠지만, 그럼에도 위와 같은 생각이 강렬하게 드는 분은 처음인 것 같다. 그렇다보니 개발 실력이 부족해도 함께하면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다. 필자가 감히 평가할 내용은 아니긴 하나, 개인적으로는 그분의 태도, 배려, 삶과 업무를 대하는 태도 등을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분만의 고유한 모습을 바라보게 된 것 같다. 짧은 하루였지만, 그분께서 보여준 모습에서 일관성이 느껴져서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인 것 같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
본인이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
생각이 필요하면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는 것
적절한 리액션을 통해 대화가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맞춰주는 것
이 소식을 접한 다른 동료들은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경우도 있었는데, 필자는 오히려 그 분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이 글의 제목을 결
로 정한데는 이유가 있다. 필자는 대체적으로 사람을 볼 때 오래 보는 편이다. 의심이 많은 탓에 자연스럽게 비판적인 사고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분께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 솔직한 의사표현과 소통이 오갔기에 비판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 그분이 하는 말과 태도에 일관성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였을 뿐더러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 대화와 태도에서 자연스러운 배려와 존중을 받은 듯하였고, 사람 자체의 따뜻함을 느꼈다.
다른 이들 역시 필자를 어떻게 바라볼지는 모르겠으나, 필자와 오랜 기간 연락하며 지내는 분들은 대체적으로 위와 같은 특징이 있는 듯했다. 더군다나 이 분은 아래 특징까지 하나 더 있었다.
- 이 모든 것이 꾸밈없었으며, 부족하다거나 과하지 않아서 그 사람 자체를 본 것 같다.
단 하루, 그것도 고작 2시간 정도 대화한게 전부였음에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결이 맞는 오랜 친구와 같은 자연스러움을 느꼈다. 어딘가에서 본 글이지만 필자는 아래 내용에 크게 공감한다.
좋은 사람, 안 좋은 사람은 없어요. 자신과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는거죠. 결이 맞는 사람과는 모든게 자연스러울 수 있어요.
물론, 좋은 사람, 안 좋은 사람이라는 앞에 수식어가 붙으면 나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고는 좋은 사람, 안 좋은 사람으로 나누기엔 주관적인 판단이 크게 개입된다고 생각한다.
예) 인성이 좋은 사람 /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
그렇기에 이 글의 제목을 결
이라고 지었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생각하기에 결
이 맞다고 판단했기 떄문이다.
6. 회고
사실 그 분을 만나뵙고 필자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어딘지모르게 비슷한 점과 필자가 느꼈던 고민들을 그분꼐서 대신 선택해준 것에 후련함과 감사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이 회사를 들어오고 난 후 약 1주일 동안 잠을 설쳤다.
이게 맞아?
어찌저찌 하다보니 벌써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과정 속에서 혼자만의 치열한 전투를 한 것 같다.
내 꿈(이상)을 쫒을 것인가, 잠시 이상을 내려놓고 현실을 직시할 것인가
매일 출근길, 그리고 퇴근 후 잠들기 전에 위 고민은 지금도 계속 하고 있다. 하지만 매번 현실과 경험을 선택하곤 한다. 그럴싸하게 꾸며진 말, 오염된 코드, 모든게 얽혀버린 관계와 구조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면서 반드시 성장해내야 한다고 다짐하며 말이다. 그래서 그분깨 더 마음이 가는 것 같다.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랄까. 그분은 자신이 그려놓은 꿈을 따라 이곳을 떠난 것이기에 신선한 자극과 위로를 받았다.
종종 연락하며 지내겠지만, 부디 실력있는 좋은 개발자로 성장하여 훗날 다시 뵙게 되길
채용과정을 통해 회사와 필자의 미흡한 점, 개선해야 할 문제점들 역시 따로 정리해놓긴 했으나, 이 역시 이상과 현실에 계속 부딪히곤 한다. 통제력이 필자에게 없기 때문이다. 통제력을 얻기 위해 꾸준히 실적을 쌓고 관계자들과 업체로부터 신뢰를 쌓고 있긴 하나, 그 기간이 결코 짧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끌거나, 따르거나, 떠나라
이곳에 입사 후 8개월 간 따르기만 하는 입장에서 조금씩 이끌 수 있는 상태까지는 되었으나, 완전히 이끌 수는 없는 상태이며, 쉽사리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는다.
윗 사람들의 통제와 고객사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조금씩 업무 주도권을 되찾곤 했으나 과연 언제까지 주도권 다툼을 해야하는가? 주도권을 얻는다고 한들 달라질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놓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애쓰고 있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어 지쳐서 스스로를 놓아버리게 된다면 떠날때가 된 것이지 않을까 싶다.
마치며
벌써 2024년이 달력의 끝자락에서 작별의 인사를 하려고 손을 들고 있다. 올해 역시 다양한 고통을 견디며 나름대로 성장(기술적인 성장 뿐만 아니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024년 마지막 또는, 2025년 초에 한 해를 되돌아보는 회고록을 쓰려고 하는데, 주제가 매우 다양해서 갈피를 못잡을 정도이다. 회사에 대한 내용 역시 소신있게 써내려갈 계획이다.
필자가 겪고 있는 상황, 개선점, 노력, 시도, 결과 위주로 작성하고자 한다.
글을 작성하고 있는 오늘은 크리스마스 당일이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카페에 와서 코딩하고, 블로그 글을 작성하고 있으면서도 문득 그분을 떠올리면 다음과 같은 단어가 떠오르면서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2024년 끝자락에 내게 주어진 크리스마스 선물
회사 입장에서(그리고 필자 개인적으로도) 아쉬운 상황이지만, 필자와 결이 맞는 한 사람을 알게된 것에 큰 감사함을 느끼며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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