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24년도 벌써 4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또한 매우 정신없이 흘러갔구나 싶다. 늦었지만 2024년도 상반기의 내게 있던 주요 일들을 정리하면서 회고하는 시간을 갖고자 글을 남긴다.
1. 준비
2023년 11월 말에 퇴사한 이후 2024년 04월에 이직을 하였다. 잠시 쉬는 기간 동안에 그 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시도해보고 공부하는 시간을 갖었던 것 같다. 블로그에 올린 것들도 있고, 올리지 않은 것들도 있는데 약 2~3개월 간 집과 카페를 오가며 매일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던 때가 아니었나 싶었다. 특히, 주변에서 '젊음을 낭비하지 말고 놀아라', '연애나 좀 해라' 등의 말들로 내게 관심을 표현할 때마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져보곤했다.
난 이게 과연 재미있는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가?
글을 쓰면서 위 질문을 다시 보면, 누군가는 '너가 뭐라도 돼?' 라고 느낄만한 질문같기도 하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은 필자의 상황, 기분, 컨디션에 따라 조금씩 달랐던 것 같다. 그러나, '재미'는 그때마다 수치가 다를 뿐 계속해서 스스로를 멈추지 않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준 것 같다. 결국,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나와는 맞지 않는 환경에 들어가더라도 그 속에서 스스로의 재미를 계속해서 찾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랄까... 반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가?'에 대한 답은 늘 한결같았다.
그냥 하는거지
'그냥'이라는 말에는 좀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사회가 필요로 하고, 내가 필요를 느끼기도 하고, 하다보면 재미있고, 그 재미라는 요소는 단순 쾌락이 아니라 내게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는 매개체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2. 이직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전에 약 6군데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규모가 큰 곳부터, 이제 막 서비스를 런칭한 스타트업까지.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 나의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절대 급하게 결정하지 말 것
퇴사한 이후에도 계속 서울에서 지냈는데, 숨만 쉬어도 고정지출 비용은 10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그러다보면 마음이 조급해질 수 있다. 필자는 현재를 100% 즐기는 능력은 없는 탓에 위 기준을 항상 떠올리곤 했다. 현재를 100% 즐기는 능력이 없다는 말은, 앞날을 먼저 고려하느라 현재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즐길 수 없다는 의미이다. 실제 퇴사 후 1개월 정도 되었을 때부터 조급함과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그럴때마다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조금 더 냉철하게 판단하기 위해 일기를 썼던 것 같다. 면접 이후 최종 2곳에서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한창 면접을 보러 이곳저곳 다닐 때, 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로부터 자신의 회사로 들어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으나, 4차례 정도 거절했다. 그 동료로부터 전해들은 회사의 근무 환경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형상관리, 버전관리의 부재
- 수동배포(FTP로 직접 소스코드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배포)
- 지원 중단된 PHP5.6버전
- 관계가 없는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사용
근무환경은 최종합격한 2곳이 더 좋았을 것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동료가 제안한 회사로 입사하였다. 그 결정을 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그래, 누군가가 내게 해준 '젊음을 낭비하지 말고 놀아라'라는 말을 이 회사에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놀아봐야겠다.
문제가 많다는 것은 내가 앞으로 해야할 것,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이기에 하나씩 해결하나가면서 나름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입사하자마자 한 3일 정도는 밤잠을 설쳤다. 내가 한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환경은 더 최악이었기 때문이랄까. 그 어떤 인수인계 자료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2000줄짜리 메소드를 분석하고 있자니 물 없이 고구마 10개정도 먹은 먹먹함과 답답한 느낌이 매우 컸다. 심지어 잘 짜여진 메소드도 아니었고, 선언하지 않은 변수 호출, 변수 재활용, 반복문과 조건문 중첩으로 인한 들여쓰기 깊이 등으로 인해 코드를 알아보기 매우 어려웠다. 심지어 관계가 설정되어 있지도 않은 테이블의 DB 쿼리는 죄다 서브쿼리였던 탓에 구조를 파악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게 맞아?
입사하자마자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한 50번은 계속 저 질문을 해왔던 것 같다. 약 3일 밤잠을 설친 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에 꽂혀서 포기를 못하겠더라. 그래서 제대로 해보기로 마음 먹고 하나씩 시도해보며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을 밟고 있다.
3. 이사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신림에 위치한 월세방에서 지낸지도 어느덧 2년이 넘었다. 2년 간 신림에서 지내면서 조용한 동네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낮과 밤에 갈 수 있는 카페는 항상 있어서 좋았으나, 신림역을 기점으로 주변에 유흥주점이 많아서 시끄러운 분위기였다. 그래서 조용한 곳으로 이사가고, 카페가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집에서 작업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조금 더 넓은 곳을 찾아 약 30곳의 집을 알아보았다. 전세사기가 많은 탓인지 월세는 더 비싸졌고, 보증금 또한 지방 투룸 전세 보증금 수준이었다. 그런데 평수는 고작 5평, 6평 남짓이었다.
서울 생활 접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가는게 맞는 것일까?
거의 반 포기상태에 이르렀을 즈음, 독산동에 꽤 괜찮은 매물이 있어서 당일날 바로 계약하고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다. 1층이긴 하지만 집 주변에 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동네가 조용하고, 술집이나 음식점이 거의 없어서 거리가 쾌적하다. 심지어 평수도 넓어졌다. 다만, 월세는 전에 지내던 원룸보다 40% 더 내야하긴 하나, 삶의 질은 훨씬 높아진 느낌이 들어서 만족스럽다. 조금 불편한 점은 어딜 가야할 때에는 무조건 버스를 타야하고, 집 근처에 시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주말에 주로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면, 이제는 거의 집에만 있는 것 같다.
4. 운동
2024년 06월 초부터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헬스장을 다니게 된 계기는 카페에 가지 못해서였다. 주말에 카페에 갔는데, 맥북에 전원이 안 들어오는 문제가 발생했다. 급하게 휴대폰으로 애플서비스센터를 검색한 후 수리를 맡겨놓고 귀가했다. 주말에 할 게 없으니 서점에 가서 책을 보다가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더라.
그러네. 나 주말에도 계속 코딩하고 휴식을 잘 못하고 있었구나.
안 그래도 운동하고 싶었는데, 이참에 헬스장에 가볼까?
그래서 바로 회사 옆 건물에 있는 헬스장에 가서 6개월 등록을 해놓고, 신나서 2시간 반 정도 운동한 것 같다.
왜 집 근처가 아니라 회사 옆 건물이냐고? 점심에 운동할 겸 회사에서 나만의 공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랄까
오랜만에 너무 무리한 탓에 다음날 출근할 때 매우 힘들긴 했었다. 운동을 시작한지 어느덧 약 3개월 정도 되었고, 1주일 4~5회 정도 꾸준히 점심 + 새벽 또는 저녁 중 1회 운동을 하고 있다. 열심히 한 만큼 주변에서 몸 좋아졌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결과로 인정받는 것 같아서 매우 뿌듯함을 느낀다. 운동을 시작하고나서 가장 좋은 점은 잠을 잘 수 있다는 것 같다.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생각이 많아지는 날에는 밤잠을 못 이루곤 했다. 그런데, 운동한 날에는 아무래도 몸이 피곤하다보니 침대에 누워서 조금만 뒤척이다보면 금새 잠에 빠져든다. 밤에 잠을 잘 자면, 다음날 운동할 때 컨디션이 좋아서 더 열심히 운동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선순환 사이클이 형성되는 것 같다.
5. 현재
2024년 초에 내게 불안함을 느끼게 한 요소들은 하나씩 정리되어 지금은 어느정도 안정화 단계에 도달한 것 같다. 다만, 회사는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입사한 후에 나름 정말 많은 것을 시도해보고 실제로 운영환경에 적용해본 것들이 있다.
- 형상관리 : Bitbucket
- 일정관리 : Jira
- 문서관리 : Confluence
- 자동배포 : Bitbucket Pipelines, Jenkins
- 개발환경구축 : Docker
지금 회사에서 일하면서 '절망'이라는 감정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이 절망감을 느끼는 요소 중 하나가 '한결같음' 아니겠는가? 2개월 전에 발생한 문제가 아직까지도 발생하거나, 다른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거나, 사실은 시스템상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이거나 뭐 이런 이유들로 인해 더 이상 개선이 불가능한 상황말이다. 고객사에게 납품하는 솔루션을 개발 및 유지보수 하고 있다보니 고객사와 직접 소통해야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이를테면, 고객사의 갑질 대응이 있겠다. 자사 솔루션이긴 하나, 고객사의 입맛에 맞게 커스터마이징을 해주어야 하는 경우가 꽤나 잦았던 모양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대화가 안 통하는게 매우 답답하고, 고객사 눈치와 기분을 맞춰주며 개발을 해야만 하는 이 환경이 매우 답답할 뿐이다. 호기심에 들어온 회사이긴 하지만, 내 개발인생에서 고객에게 솔루션을 제공하는 솔루션 업체(SI 포함)는 여기가 마지막이었으면 싶은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명확한 문제들이 있기에 그 속에서 재미를 찾아보려 한다. 아마도, 아래 두 상황 중 하나인 경우 그때가 명확한 퇴사 트리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이제 더 이상 해결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낄만한 문제가 없거나,
- 문제를 해결해도 전반적인 업무 프로세스 및 문화에 개선의 여지가 없거나
결국, 두 번째로 인해 퇴사할 것 같긴한데, 아직까지는 시도할 만한 힘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명확한 판단은 안 서기에 더 힘을 내보려 한다.
마치며
2024년 상반기는 무언가 많은 일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던 것 같다. 무언가 끝나고 다음 단계가 발생하는게 아니라 그 흐름이 아날로그처럼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시간이 더 빠르게 간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일(특히, 고객사)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다시 인간혐오가 생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스스로를 보고 있으면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24년을 보내기 전까지 큰 문제 없이 잘 견뎌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