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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그냥 할 것

들어가며

운동을 시작한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학창시절부터 꾸준하게 운동을 해왔지만, 거의 5년 간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운동을 안 해오던 탓에 체력이 아주 형편없을 정도였다. 매번 헬스장 등록을 해야지라고 다짐해도 집에서 헬스장, 직장에서 헬스장 등 여러 동선과 시설 등을 따져보는 과정에서부터 지쳐서 운동을 미뤄왔던 것 같다. 6월 초 토요일, 어느때와 다름 없이 카페에 가서 코딩하고 있는데, 맥북이 고장나버린 탓에 서비스 센터에 맡겨놓고 서점에 들렸다가 시간이 남아 돌아서 직장 근처에 있는 헬스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등록하자마자 신나서 약 3시간 동안 운동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곤 일요일 하루종일 온 몸이 쑤셔서 그냥 누워서 하루를 보냈다.

생각 그릇 비우기

위에서 잠깐 언급한 헬스장에 등록하는 과정을 보면 필자의 성향이 너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어떠한 결정 하나를 하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따져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탓에 항상 생각이 많다. 잡생각이 아니라 현실적인 모습을 상상하고, 계산하는 성향이 어릴적부터 자리잡아 왔던 것 같다.

이러한 성향 탓에 이직을 하거나, 이사할 집을 구하거나, 심지어 연애를 시작할 때 꽤나 오래 걸린다. 시작이 어렵지, 시작만 하면 그 이후엔 꽤나 쉬운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고쳐지지가 않는다.

일을 함에 있어서는 이런 성향이 썩 나쁘지는 않은데, 일상생활을 할 때에는 스스로가 조금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운동을 하면서 좋은 점 중에 하나가 바로 '생각이 비워진다'는 것이다. 필자 기준에서 고중량으로 운동을 하는 시간 만큼은 다른 잡생각은 사라지고 '근육이 아프다', '호흡이 가쁘다', '자극이 제대로 안 들어왔다' 혹은 '자세에 조금 더 신경써야겠다' 등의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차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정말 좋게 느껴진다. 회사에서 고객사 대응, 업무 처리 등 다른 사건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운동하는 시간 만큼은 생각에서 자유로움을 얻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세밀한 태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한들 결국 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말이다.

고통은 또 다른 고통으로

7월부터 계속 쌓여온 스트레스가 8월 중순 즈음에 터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때도 운동은 꾸준히 해왔던 것 같다.

터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은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했다는 반증이겠다. 밤낮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고객사의 연략에 맞춰 쉬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때 모습을 떠올리면 스스로가 한 마리의 말처럼 느껴진다. 채찍을 든 고객사를 태우고 질주하는 한 마리의 말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 반증 조차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도 계속 스트레스는 받고 있긴 하나, 8월 중순 필자가 고객사에게 톤앤매너를 지켜줄 것을 요구한 이유로 전보다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진 않고 있는 듯하다. 회사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난 후(거의 매일이지만) 헬스장에서 열심히 쇠질을 하다보면 정신적인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으로 대체된다.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을수록 강도를 더 높여서 운동하게 되는 듯하다.

이렇게 운동을 마친 후의 결과는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어디선가 아래의 문구를 본 기억이 있다.

감정은 지나가고 결과만 남는다.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누워버리면 남는 것은 아직 풀리지 않는 피로감이다. 오히려 몸에 적당한 고통과 피로감을 안겨준 후 침대에 누우면 그 잠은 매우 달콤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불면증도 거의 사라진 듯하다.

다른 이들에게 영향받지 말 것

필자는 마이웨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결국 선택에 대한 결과는 스스로 지겠다는 태도에서 말이다.

사회 통념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위들을 제외한 선에서의 마이웨이를 말한다.

넷플릭스 바이킹스 시즌 4에서 라그나가 처형당한 이후 잉글랜드 왕국의 왕인 엑버트가 어린 앨프레드에게 권모술수를 알려주는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네가 와인을 마시는 동안 내가 마신 것은 물이란다. 다른 이들에게 영향받지 말거라.

필자가 운동을 다시 시작할 때 주변의 반응은 3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응원해주는 부류, 흥미롭게 바라보는 부류, 비아냥거리는 부류. 신기하게도 이들 중에서 가장 머릿속에 선명한 부류가 비아냥거리는 부류이다. '니가?', '어차피 티도 안 나'라고 말하던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운동했던 것 같다. 꾸준히 운동을 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 이상 필자에게 비아냥거리지 않고, 오히려 '팔뚝이 두꺼워졌다?', '몸이 다부져졌네?' 등의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낀 것 같다. 결국, 필자는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받게 된 것이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어떻게 승화하냐에 따라 스스로가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의 결이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누군가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 포기해버린다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정진해야만 본인에게 온전히 긍정적인 결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최근에는 주위 사람들 중 일부도 같은 헬스장에 등록해서 회사 점심 시간 또는 퇴근 후에 함께 운동을 즐기게 되었다.

처음엔 팀원 7명 중 필자를 포함한 동료 2명만 운동을 하였으나, 지금은 필자를 포함한 총 5명이 헬스장에 다닌다.

그냥 할 것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힘든데 운동을 왜 하냐?'라는 질문을 종종 듣곤 한다. 그들의 질문에 꽤나 정성스레 답을 하긴 하나, 혼자서 생각한 답은 단 하나이다.

내게 좋으니깐 그냥 하는거지 뭐.

스스로에게 '운동을 좋아하나?'라고 질문을 하면 '글쎄...'라는 답이 나온다. 맹목적인 운동 자체를 좋아하기보단 운동 후에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보상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근육통 조차도 '내 몸의 근육의 결이 이렇게 생겼겠구나'라고 느껴지는 것이 좋다. 그 외 잠을 잘 잔다던지, 체력이 늘었다던지, 컨디션이 환기된다던지 등의 결과물들이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에 힘들더라도 좋게 느껴진다.

필자도 가끔 운동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헬스장에 가서 몸이 달궈지기 시작하면 또 꽤나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귀찮거나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아주 잠시일 뿐 막상 몸이 풀리기 시작하면 근육으로 전달되는 고통을 즐기게 되는 것 같다. 20대 초반에 헬스할 때에는 자극을 느끼지 못했던 운동인데 최근에 정확한 자극이 느껴졌을 때 희열이 느껴지는 동시에 어딘지 모를 감사한 마음이 든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 느껴지는 감사함이랄까. 앞으로도 계속 할 생각이다. 운동이든, 일이든.

아, 운동은 '그냥' 꾸준히 할 것 같은데, 일은 '부당한 상황만 아니라면'이라는 조건과 '당분간'이라는 기간이 붙는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부당한 상황'에 대한 주제도 포함을 시켰는데, 글 내용 전체가 오염되는 느낌이라 전부 지웠다.

마치며

요즘도 계속 바쁘다. 머릿속에 글을 쓸 주제는 넘쳐나는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2~3시간 동안 몰입을 하기에 하루가 턱없이 부족하다. 수많은 주제들 중에서 이 주제를 선택해서 글을 쓴 이유는 필자의 인생 굴곡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었다. 개발 관련 블로그를 하고 있지만, 최근에 개발 관련 글은 잘 올리지 않고 있다. 이미 공식문서만 봐도 잘 정리되어 있기도 하고, 건강한 삶의 태도와 인식이 개발을 할 때 고스란히 녹아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유연하면서도 논리정연하고 합리적인 사고, 올바른 판단 모두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상태여야만 가능한 것을 말이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설계한 구조와 코드는 보면 작은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예전에 작업해놓았던 코드와 구조를 한참 뒤에 다시 보면 '왜 이렇게 했지? 이렇게 해도 되는데 말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경우를 보면 대체적으로 유연함과 논리정연함의 균형이 맞지 않은 상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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