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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여름이었다

들어가며

8월 말, 여름의 끝자락에 워크샵을 다녀왔다. 몸 상태도 회복이 안 되었을 뿐더러 토요일을 끼고 다녀와야 했던 터라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평범한 금요일

감기 몸살로 1주일째 고생하고 있었다. 바이러스성 인후염과 편도염까지 동시에 걸린 탓에 시름시름 앓다가 출근했다. 운전을 해야하는 상황이다보니 차마 워크샵을 뺄 수도 없었다.

'난 오 늘 신데렐라가 될 것이다. 12시 땡 하면조용히 차에 들어가서 약먹고 자겠노라' 다짐하며 출근했다.

오전에 업무보다가 병원에서 진료받고, 오후 3시에 서울에서 가평으로 출발했다. 항생제가 포함된 약기운 탓인지 약간의 몽롱한 기운으로 운전을 했지만, 잘 도착했다.

서울을 빠져나오는데 약 2시간 걸렸다.

연수원(이라고 불리우는 펜션)에 도착했으나 펜션을 구경할 틈도 없이 밀린 고객사의 요청사항들을 빠르게 해결하고 야외 테라스에서 만찬을 즐기기 시작했다.

항생제를 먹은 탓에 다들 술과 함께 즐기는 시간에 혼자서 콜라만 홀짝거리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노래방이라고 불리우는 합주실

몇달 전부터 경영팀 동료가 가평 펜션의 3층 노래방을 자랑하곤 했다. 꽤나 잘 꾸며놓았다며 말이다. 만찬을 즐기다가 조용히 3층으로 올라가보았다. 그 동료가 한 말은 참이자 거짓이었다.

이건, 노래방이 아니라 합주실이잖아?

드럼, 키보드, 건반, 일렉 기타, 베이스 기타가 놓여있었고, 가운데에는 악보를 볼 수 있는 노래방 기기 비슷한 화면이 있었다. 약 6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피커와 조명까지 완벽했다.

사진이 없어서 매우 아쉽다.

다들 즐겁게 먹고 마시고 있을 때, 드럼연주를 시작했다. 약 8년 만인가, 다시 드럼스틱을 잡게될 줄은 몰랐다.

필자가 개발에 발을 들이기 전에는 약 10년 간 부푼 꿈을 안고 드럼을 쳤었다. 단지, 현실을 마주한 이후 꿈을 접었을 뿐.

자연스레 조성된 밴드

회사에는 노래를 잘하시는 분, 건반을 잘 치시는 분이 있다. 한분씩 3층으로 올라와서 노래 한 곡씩 하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즐기는 분위기가 되었고, 그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다.

10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 다같이 연습실에 모여 밤새 합주하며 음악을 나누던 때가 떠올랐다.

전무님이 일렉기타를 치기 시작하셨다. 분명 첫 코드는 맞는데, 이후부터는 박자만 맞고 코드는 맞지 않았음에도 싱어들이 부르는 곡마다 잘 어울리게 치신 것 같다. 그러다가 동료 한 분이 자연스레 건반 앞에 앉아 건반을 연주했고, 필자도 분위기에 휩싸여 드럼스틱을 잡았다. 관객으로 앉아있는 동료들, 악기로 연주하는 동료들, 노래부르는 동료들 간 눈웃음 지으며 음악을 공유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계는 어느덧 새벽 2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오늘 분명 신데렐라가 되기로 했는데...

새벽 2시, 아쉽게도 노래방 기기 고장으로 말로는 표현 못할 여운을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입사한지 얼마 안 되어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분도 있었고, 기존에 인사정도만 하던 데면데면한 사이인 분들도 있었으나, 그 자리에서 만큼은 서로가 친밀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소한 행복과 감사

침대에 누워 회상해보았을 때 잔잔한 행복을 느꼈다. 음악(노래)이라는 큰 틀에, 저마다의 특기를 하나씩 조합해서 잘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감사함을 느꼈다. 그 어떠한 사전 연습이나 정해진 룰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자연스럽게 음악이라는 큰 틀안에 모두가 즐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워크샵이 될 것 같다.

다시 일상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밥먹고, 펜션을 정리하고 낮 12시 즈음에 서울로 출발했다. 회사 주차장에 주차해놓고 집에 가자마자 약 먹고 바로 쓰러진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일요일 오후였다. 컨디션이 조금은 괜찮아졌고, 밀린 집안일과 출근 준비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월요일, 다들 피곤해보였지만 얼굴은 한층 밝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오후부터는 다시 찌들어가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이런 모습들 조차 재미있게 느껴진다. 회사 밖에서는 편한 사이, 회사 안에서는 다시 비즈니스 관계가 형성되는 것마저 자연스러우니 말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마치며

벌써 9월 1일이다. 7, 8월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공기마저 조금은 선선해진 가을이 찾아오는 것 같다. 지난주는 몸살 덕에 강제로 휴식을 취했고, 이번주는 회사 워크샵 덕에 강제로 힐링을 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내면이 항상 요동치던 내 모습은 어디가고, 다시 잠잠해진 내 모습을 보니 이것마저도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래,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많지만, 2025년까지 남은 3개월 동안 좋은 기억을 떠올려 잘 이겨내리라는 의지를 담아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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